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발단 (문단 편집) === 계속된 오판과 국가간 연대의 부족 === * [[히틀러]] 집권 : '''독일 폭주 시작'''. 히틀러가 호전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이미 집권 때부터 폴란드에서 감지했는지 폴란드는 프랑스에 같이 손 잡고 독일에게 예방전쟁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명분이 없고 프랑스도 전쟁하기 싫어서 반대, 그 결과 폴란드는 아예 독일이랑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 스트레사 체제 붕괴 : '''이탈리아 이탈'''. 1935년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폐기하자 영프이 3개국이 공동대응체제를 구성했는데 이것이 스트레사 체제였다. 즉 독일을 감시할 역할을 영프이 3국이 한 것인데 문제는 첫 단추부터가 잘못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몰라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사실 이것에 관심도 없었다. 본인 목적은 에티오피아랑 전쟁을 해서 이기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것에 관심도 없었다. 문제는 영국도 스트레사 체제를 구축해놓고는 뒤에선 딴 짓을 벌였으니 독일과 함께 해군조약을 맺은 것이었다.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폐기함에 따라 무제한으로 무장할 수 있게 되었기에 함대 역시도 다시 재건할 여건이 되었다. 그런데 영국은 스트레사 체제보다는 독일과 단독으로 해군조약을 맺어 독일 해군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것을 택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영국의 실수가 되었다. 영국은 영국과 독일의 해군비율을 100 : 35로 설정했지만 정작 독일은 35를 넘기는 커녕 20도 채우지 못했다. 결국 영국은 독일의 해군 재건을 공식적으로 용인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웃나라 프랑스에게 불신감을 사게 되었다. * [[라인란트 재무장]] : '''벨기에 이탈'''. 1936년 독일은 라인란트를 다시 재무장하려고 했고 라인란트에 온 독일군이 '''30만'''이나 된다는 오판을 내린 프랑스는[* 정작 독일에서는 군부가 "라인란트 재무장은 좋은데 우리 프랑스랑 맞짱 뜨면 100% 짐" 이라고 주장해서 히틀러와 군부 양측이 조율한 끝에 약간의 병력 보내서 깔짝거려 보고 아니면 프랑스에게 사과하기로 결정해서 재무장을 위해 보낸 군 병력은 22,000명, 지역 경찰까지 합쳐도 36,000명이었다. 또 그 중에 라인란트에 보낸건 3'''천'''여명에 불과했다.] 대독 포위망을 구성한 국가와 연대해보려고 했지만 벨기에 하나 빼고는 라인란트 재무장에 관심도 없었다. 더욱이 프랑스 자신도 단독으로 대응에 나서는 것에는 소극적이었고 도리어 영국이 적극적으로 나왔다. 문제는 이미 1년전에 거하게 통수맞은 프랑스가 영국을 신뢰하기는 어려웠고 더욱이 영국은 육군이 약했다. 결국 백기는 프랑스가 들어버렸으며 프랑스가 백기를 들자 영국도 백기를 들어버렸는데 이는 벨기에에게 프랑스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 대독 포위망에서 이탈해 중립국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 [[안슐루스|오스트리아 병합]] : '''오스트리아 이탈'''. 1938년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문제는 [[민족자결주의]]에 위배되지 않았고 어쨌든 오스트리아 자신이 원해서(?) 합병된 것이라 로카르노 조약 위반임에도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실제로 국제연맹에서 이를 비판한 국가는 딱 하나 [[멕시코]] 뿐이었다. 그나마 이는 나은 사례 * [[뮌헨 협정]] : '''체코슬로바키아 이탈'''. 같은 해 독일은 이번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를 노리고 체코슬로바키아를 압박했는데 앞서 나온 사건들은 귀여울 정도로 추악한 사건이다. 대독 포위망을 구성했던 프랑스는 폴란드를 돕는다며 체코슬로바키아를 팔아먹는데 일조했고 폴란드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독일에게 붙어 땅을 떼어먹은 데다가 그것으로도 모자라 더 뜯어먹었다. 영국도 프랑스와 별로 다를 바 없었고 국제연맹도 마찬가지, 비록 민족자결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고는 하나 히틀러의 영토야욕이 확실해진 이상 이를 저지해야 했는데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의 악몽이 남아있던 영국이나 프랑스는 어처구니없게도 서로 눈치나 보고 있었다(...) 물론 그런 끔찍한 전쟁을 겪은 탓에 '에이, [[아돌프 히틀러|어떤 멍청이]]가 [[제1차 세계대전|그걸]] [[제2차 세계대전|다시 해?]]' 라고 상식적인 기대를 한 것도 이유긴 하지만 어쨌든 그 결과 체코슬로바키아는 자국 의사는 단 한줄도 반영되지 못한 채 주변국에게 영토를 거하게 뜯겼고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한 히틀러는 체코를 보호령으로 삼고 슬로바키아는 괴뢰국으로 만들었다. 결국 뮌헨 협정에 참여한 국가들 중 영국,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는 패자가 되었고 장기적으로 보면 폴란드도 패자가 되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영국이나 프랑스나 전쟁을 두려워해서 독일이 뭔 짓을 해도 어쩌질 못했지만 전쟁 준비가 안 되어 있기는 독일이 더했다. 분명 독일은 라인란트 재무장이나 오스트리아 합병 등을 했지만 그 때마다 반대한 것은 독일 군부였다. 그들은 지금 전쟁을 해서 영국과 프랑스를 이기리란 확신을 내릴 수 없어서였기 때문,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국력을 영국+프랑스를 넘는 수준으로 과대평가했고 군사력 역시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심지어 뮌헨 협정을 맺었을 때조차 그랬다. * [[독소 불가침조약]] : '''소련 이탈'''. 1939년 독일과 소련 사이에 맺어진 불가침조약, 언뜻 보기엔 그냥 평범한 불가침조약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동유럽 분할을 합의한 조약이다. 사실 이전부터 소련은 독일을 경계했고 그 대책으로 영국, 프랑스, 폴란드에게 손을 내밀어 다 같이 독일을 압박하자는 구상을 했다. 문제는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소련과 사이가 나빴고 더욱이 이웃나라인지라 더 불안감이 심해 믿지 못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도리어 소련이 손을 내밀기 전까지는 독일과 소련이 손 잡는게 아닌가 우려하기까지 했을 정도, 스탈린이 그렇게 성의를 보였음에도 프랑스, 특히 영국의 반응은 스탈린을 만족시켜주지 못햇고 결국 스탈린은 영국, 프랑스, 폴란드 대신 독일과 협상해서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이것이 이후 독일이 먼저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해 양면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 동부전선이 형성되지 않게 했음을 생각해보면 영국과 프랑스 입장에서는 최악의 사태가 되었다. * [[폴란드 침공]] : '''폴란드 이탈'''.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올린 일로 영국과 프랑스는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기...는 개뿔, 프랑스는 물론 영국까지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긴 했지만 '''아직도 전쟁이 싫어서''' 폴란드까지 공격당했는데도 [[가짜 전쟁]]을 그것도 폴란드가 공격당하고 점령당하고도 '''7개월이나''' 가짜 전쟁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는 전쟁 6주만에 패전하고 영국만 남는 초라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